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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도서관의 역사 -수메르에서 로마까지- (라이오넬 카슨) 서평 본문

일상/서평

고대 도서관의 역사 -수메르에서 로마까지- (라이오넬 카슨) 서평

하정_ 2019. 4. 11. 23:12

 예전에 과제용으로 급하게 읽었던 책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인류는 음성언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게 되는데, 전달양의 한계와 기억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이를 대체할 수단을 찾게 된다. 그렇게 발명된 것이 문자언어이다. 문자언어로 인해 인류는 점점 더 발전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정보를 단순히 집합한 것이 원초적 문고의 형태이다. 여기서 나아가 정보와 기록을 전개로 학술과 문화의 효과적 발전을 통해 인류생활의 향상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도서관의 의의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도서관, 그 중에서도 고대 도서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근동지역의 에블라 왕궁에서 발견된 점토판 중 두 개의 점토판에 수메르인의 문학작품제목들이 새겨져 있었다. 책에서 언급하듯 현대의 도서관 사서들이 소장된 도서의 목록을 만들 때 부딪혔던 문제들과 동일한 문제에 대해 고대의 필경사들이 어떻게 대처했나를 알 수 있었다. 또 기원전 13세기경 번성했던 하투사스의 유적에서도 점토판이 발견됐는데, 이 점토판엔 현대 판권사항과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으며 이는 간단히 읽어보기만 해도 간단한 내용과 끝마무리’, 원문을 필사한 필경사의 이름 등을 제공하고 있어 그 점토판이 담고있는 내용과 그것이 어떤 작품의 부분인지를 알 수 있었다. 최소 3000년 전의 사람들이 이런식으로 서지사항을 기록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기술이 엄청나게 진보한 것 같지만 컴퓨터 기술을 제외하면 사실 생각보다 진보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그 서지사항의 순서가 뒤섞여있고, 정보가 부정확하다고는 하나 장서를 조직화하는 과정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고대 도서관인 니네베 도서관도 현대의 도서관과 같이 도난, 훼손 문제에 시달렸고, 이에 도난혹은 훼손을 할 시 신의 저주가 있을 것이다같은 내용을 적어 협박했다는 것이 우스우면서도,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장서를 관리할 방도가 없었으니 협박정도가 그들의 최선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아는 도서관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시기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9세기 경 현대도서관의 시조격인 도서관이 탄생했다고 한다. 고대그리스-로마에서는 책이라는 단어를 대개 장편(두루마리하나에 기록X)일리아스,오디세이 등은 몇권의 책을 일컬을 때 사용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최초의 도서관이자 고대의 역사 유물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도서관이라 일컬어진다. 이는 왕이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그의 특정한 필요를 위해 자료들을 전문화했다고 하며, 여러지역에서 수집한 온갖 종류의 책을 보유하고 학문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자격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공공도서관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왕들은, 저명한 지식 집단들을 끌어오기 위해 노력했으며 도서관장도 왕실에서 직접 임명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책, 지식과 정보가 그들의 권력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위엄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라의 지식(정보)은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다, 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기원전 3세기 중반에 로마 도서관 자료들은 그리스와 소아이사에서 벌어진 전쟁을 통해 훨씬 더 탄탄해진다. 일례로 루쿨루스의 도서관은 북부 소아시아에서의 군사 출정동안 수집된 도서전리품으로 세워진 것이다. 루쿨루스는 친구와 친지들 뿐만 아니라 로마에 살고 있는 그리스 학자들에게도 자신의 장서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시기 주목할만한 도서관은, 약탈이 아니라 문학-학문에 헌신한 사람들이 장서를 모아 설립한 것인데, 일례로 키케로 도서관과 아티쿠스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장서가 매우 많고 다양하며, 고도로 훈련된 노예를 사서로 고용하여 필사본을 만들고 두루마리룰 다시 책꽂이에 올려두고 손상된 두루마리를 수선하고 목록을 추가하고 갱신하는 등의 일을 하게 했다. 이렇듯 개인도서관이 있던 시대에는 거의 모든 장서의 수집이 알렉산드로스가 쓴 책을 지인과 연합하거나 직원이 필사함으로써 이뤄졌으며,이시기 로마에는 몇몇 서적상이 있어서 책 사는 것도 가능했다고 한다.

 

로마의 특이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목욕탕 도서관이었다. 로마인들은 공공목욕탕을 좋아했다고 한다. 공을 치거나 잡담 즐기는 것처럼 기분전환으로 도서관에 들러 책 보는 사람이 주된 이용자층이었으며, 목욕탕과 도서관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편리하게 생각하는 일부 문학가나 학자들이 도서관 이용했다고 한다. 꼭 현대의 만화카페같았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 이를테면 지하철역 같은 곳에 미니 도서관을 만들어 근처 공공도서관과 연계해 대출-반납할 수 있게 하면 이용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공간이 부족할 경우, 오늘날은 방안에 더 많은 서가를 둘 수 있게 공간 활용에 힘쓰지만 벽감안에 아름다운 책함을 두었던 로마의 도서관은 공간활용이 소용이 없어, 많은 도서관을 짓거나 잘보지 않는 책들을 따로 보관하는 장소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도서관의 보관서가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또 납본을 받는 국립중앙도서관을 제외한 오늘날 도서관은 대부분의 책을 구입하고 일부는 기증받는다. 그러나 로마의 공공도서관은 일부를 기증받고 대부분을 필사해서 구비하였으며 책을 구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로마공화정시대에 책이 유통되는 대표적인 방식은 작가가 친구나 동료작가 후원자 개인장서소유자 등에게 자신의 작품 필사본을 주는 것이었으며, 공화정시대에 책매매는 별로 성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국시대 당시에는 서점이 너무 많아 전문화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책판매에서 얻는 것 전혀 없었음에도 서점에 협조했는데, 이는 독자층 확보, 본인이 비용 해야 하는 필사본 비용을 서점이 부담해서라고 추측된다.

 

이러한 양상을 보았을 때 당시 서적상들과 도서관은 약간의 경쟁관계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도서관을 운영함으로써 절대적인 지식권력을 소유해야 하는데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에게 필사본을 팔아대니까 말이다- 서적상이 손님이 요청한 책 수중에 없을 때 필경사를 도서관에 보내 필사 해오게 하고, 반대의 경우도 성립됐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도서관과 서적상은 공생관계로 보인다.

 

5세기 초 로마제국은 두가지 근본적 변화 겪게된다. 바로 정치적-정신적 변화인데 기독교 문학작품은 도서관에서 서가로 정리될 수도 없어 전용 도서관이 있어야 했다. 수도원에서 이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현대도서관으로 발전해가는 첫걸음이다. 서로마 제국의 수도원 도서관이 주요한 역할 담당했으며, 수도승이 반드시 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규율은 베네딕투스의 규율에 의한 것이다. 수도원에서는 서적상에게 책을 구입하거나 선물받았을 것이며, 수도원의 장서는 필사, 선물, 판매, 절도, 약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져 후기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주요 도서관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이 책은 지식 정보의 보관처인 도서관이 고대 근동제국의 도서관에서 그리스, 로마, 기독교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굳이 도서관의 역사가 아니더라도 두루마리에서 양장본으로 책의 형태가 변하는 과정 또한 언급하고 있어 우리 문헌정보학과생들이 읽기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각 장의 여백이 지나치게 많지 않나 싶다. 각 장에 들어가는 정보가 적다는 것은 독자가 책장을 일반적 도서에 비해 많이 넘겨야 함을 의미하며, 이는 독자의 집중을 흩뜨릴 수 있다. 불필요한 그림을 제거하고 난외서명을 위로 올려, 한 장에 내용을 효율적으로 담아야 할 것이다. 이용자에게는 두툼한 두께또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으니 말이다. 요약하자면, 담고 있는 내용은 유익하고 정보문화사 과목 공부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겠으나, 그 자체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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