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간의여름
탈코일기(작가1) 서평 본문
사회에서 부여한 여성성은 얼마나 조악한가. 또 얼마나 견고한가.
"꼭 머리 짧게 자르고 화장 안 해야만 페미니스트야? 그게 페미니즘이면 나 안 할래!"
놀랍게도 작년 6월의 내가 '탈코르셋'담론을 보며 했던 생각이다.
작년 7월, 책으로 정식으로 출판되기 전 sns로 탈코일기를 만났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낙태죄'가 합헌이라 처벌이 되는 것도-지금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지만 당시에는 합헌이었다.-, 사회를 이루는 많은 것들이 부조리한 것 투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탈코르젯'의제에만 두루뭉실한 태도를 유지하곤 했었다.
주인공 '김뱀희'가 겪는 일상은 내가 겪은 일상이기도 했다.
더이상 두루뭉실, 설렁설렁,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깨달은 예쁘고 똑똑한 나'로 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왜 꼭 여자는 예뻐야 하는가? 왜 똑같이 피곤하고 힘든 상황에서 꾸밈을 강요받는가?
본격적으로 '탈코일기'에 대해 소개하기 전에 '탈코르셋' 개념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코르셋은 서양 여성들의 허리를 졸라매며 그들의 인생을 억압해왔다.
탈코르셋 담론에서의 코르셋은 문자 그대로의 코르셋이 아닌, 여성의 인생을 억압해온, 대유로서의 코르셋을 말한다.
다시말해 코르셋=사회에서 규정한 여성성의 총체라는 것이다.
탈脫코르셋은 그러한 코르셋을 벗어던진다는 뜻으로, 여성에게만 부여되는 내/외적 억압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다만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는 '탈코'의 개념은 사회가 규정한 '외적'여성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므로 나또한 외적 코르셋에 집중하여 글을 써보겠다.
"우리는 가끔 힘이 빠진다. 방관할까, 말까, 그리고 우린 너무 일찍 알아버린다. 우리는 방관할 수 밖에 없다."
"미의 기준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전족과 코르셋. 둘의 공통점 첫번째, 절대적인 미의 기준. 두번째,여자의 의존성. 여자의 기형적인 '얇음'과 '마름추구'로 여자에게 없으면 안되는 존재가 된 남자. 이러한 의존성이란 미의 기준은 현대에 그대로 답습된다. 코르셋은 위기의 순간에 나의 약점이 된다."
"우리는 스스로 안타깝게 여길 필요가 있다. 아주 짧게. 아주 잠깐동안 슬퍼하고, 오래 분노하라.
그 분노는 개인의 혁명이자 너의 시작이 되니, 행동의 파장이 거셀수록 안심하라."
나는 되도록 오랫동안, 될 수 있다면 평생 짧은 머리와 화장을 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할 생각이다.
이건 정말 개인의 혁명이자 나의 시작, 내 주변인들의 시작이 되니까.
나를 보고 단 한 명이라도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머리가 짧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면.
지금 당장 생활에 치여 머리를 자를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이더라도 언젠가 우리는 한 목소리를 낼 날이 오겠지.
내 시작이 된 책이다. '예쁘지 않아도 되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 책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그래서 이 책이 참 고맙다.
수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고 여성이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또 사회에서 부여한 권력이 허상이라는 것도.
실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꽉 졸라맨 오비 탓에 숨쉬기가 불편했고, 먹은 간식들까지도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저녁이 돼도 더운 날씨 탓에 피부에 몇 겹이고 얹은 파운데이션이 뭉치는 느낌, 광대를 따라 사선으로 바른 블러셔가 땀에 지워지는 느낌. 난시 교정 기능이 없어 뿌옇게 번져 보이는 서클렌즈와 몇 겹씩 쌓아 올린 아이섀도, 아이라이너, 글리터, 마스카라, 인조 속눈썹 탓에 눈가가 간지러워도 혹시라도 번질까 그 근처는 손도 대지를 못했다. 그 좋아하는 타코야끼와 먹고 싶었던 일본식 빙수를 먹으면서도 입에 바른 틴트가 지워질까를 계속해서 걱정했고, 꽉꽉 졸라맨 오비 탓에 먹는 족족 체했으며, 커다란 천을 둘러싼 형태의 유카타는 바람이 불면 맨다리가 훤히 드러나서 화들짝 놀라며 손으로 펄럭거리는 유카타 자락을 붙잡아야만 했다. 내가 동경 헀던 여름 축제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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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화장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날 축제에서 느꼈듯, 화장은 내 시간과 체력을 갉아먹었다. 화장을 위해 여행 중이라 피곤한 와중에도 난 1시간씩 일찍 일어나야 했으며, 땀을 흘리면 수정화장을 해야 했으며, 사진만 찍기에도 바쁠 때 거울을 틈틈이 들여다봐야 했다. 인천에서 후쿠오카로 향할 때 위탁 수하물의 무게를 쟀을 때, 10 kg가 나왔는데, 그 중 2 kg 이상은 화장품 때문이었다. 4일동안 바를 파운데이션, 메이크업 베이스, 섀딩, 프라이머 2개, 아이섀도 12개, 틴트 3개, 마스카라 2개, 인조 속눈썹 3쌍, 블러셔 2개, 아이라이너 2개, 아이브로우 제품 3개, 글리터 2개, 메이크업 픽서, 브러쉬 6개, 화장을 지울 클렌징 워터, 클렌징 오일, 다음날 화장이 잘 먹기 위한 팩까지. 여행을 즐길 몇 시간, 여행의 피로를 풀 몇 시간을 나는 공연한 곳에 날린 것이다. 자기만족이라고 말하기엔, 그건 너무 자기 학대적이었다. 누가 자기만족을 자신을 학대해가면서까지 하냔 생각이 들었다.
유카타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유카타를 입은 나는 예뻤다. 하지만 만족은 거기서 끝이었다. 통자인 허리가 신경 쓰였으며 넓은 어깨가 신경 쓰였다. 속은 좋지 않았고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내가 동경했던 것을 현지에 가서 직접 체험해봤는데, 인생에서 최고로 예쁜 나로 여행을 했는데 나는 왜 기분이 좋지 않았으며,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을까? 그것에 대한 해답은 며칠 후 알게 되는데, 그건 바로 내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였다. 예쁜 걸 좋아하는 건 사람의 본성적인 욕구지만, 그 예쁜 것이 꼭 나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글을 보고 머리를 싹둑 잘랐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이상한 기분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후쿠오카에서의 3박 4일은 단순히 추억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러 생각을 하게 하고, 결국 내 삶의 방식을 바꿨기에 내게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작년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온 후, 11월에 썼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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