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간의여름
딸에 대하여(김혜진) 서평 본문
무겁다.
책을 편 순간부터 덮을 때까지 머리를 뒤덮는 생각이었다.
많고 많은 서가의 책들 중에서 굳이 이 책을 꼽은 건 바로 이 무거움 때문이기도 했다. 책 뒷면에 적힌 소개글부터 느껴지는 무거움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덮쳤다.
요양보호사인 엄마와 그의 딸, 그의 여자친구의 이야기. 엄마와 딸에게 일어나는 독립적인 일련의 사건들은 얽히고 설키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는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도 그게 잘못됐다고 떠드는 이유가 뭐니? 그런 일을 왜 네가 해야 해? 잘못된 일이면 자연스럽게 바로잡히는 법이야. 왜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들 일에 앞장서고 진을 빼느냐고.”
“엄마, 이건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야.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리고 지금 내가 혼자인 것도 아니잖아.”
...
“지금이라도 우리 딸이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내 딸보다 훨씬 못한 애들도 결혼해서 고생 없이 잘 사는데. 아이도 낳고 가정을 꾸리면서 재미나게 사는데. 그 애는 왜 그 덥고 더러운 길바닥에서 헛짓이나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그걸 보는 내 심정이 어떤 줄 알아요? 내 입장이 한번 돼 봐요. 부모라고 한번 생각해봐요.”
주고받는 대화들은 점도가 너무 높아, 가슴에 달라붙어 숨도 쉬기 벅차게 만든다. 내가 새벽에 고민했던 노년의 삶, 나의 삶과도 너무 닮아있어서.
어쨌든 햇살 잘 드는 일요일 아침에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느즈막한 점심을 먹고 차까지 마신 후 도서관에 비척비척 걸어가 서가에서 우연히 골라내어 순식간에 읽어내려가면 모를까.
진로와 얄팍한 지갑사정, 인간관계, 나아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지금의 나에게는 조금 버거운 책이었을 지도 모른다. 조금 안정된 사회인들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간결하면서도 술술 읽히는 문체 탓에 초등학생도 읽는 수는 있겠다만, 내용이 담고 있는 무게 탓에, 썩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방황할 어느날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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