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간의여름
소년이 온다(한강) 서평 본문
내가 건너온 무더운 여름을 정말 그는 건너오지 못했나.
215페이지라는 적당한 두께감과 가독성이 좋은 글꼴, 글 간격. 그러나 이 책을 읽어나가는 것은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도 무겁고, 감정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활자로 전달받을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 학살자에 대한 분노, 당시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훨씬 어린아이들이 느낀 그들의 심정. 읽는 내내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다.
당시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객관적으로 서술만 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울림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친구를 찾기 위해 도청에 온 동호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과거 이야기, 혹은 당시 이야기, 그 사건 이후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죽은 동호의 친구 정대, 도청에서 시체 정리하는 일을 하던, 시간이 흘러 출판사에서 일하는 은숙, 도청에서 싸우다 감옥에 가, 고문을 당한 김진수, 노동운동을 하다가 미싱사가 된 선주, 아들을 잃은 동호의 어머니, 마지막으로 작가. 그들은 독립된 장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여러 가지 시점에서 사건을 묘사한다. 각 장을 읽을 때마다, 독자는 단순한 독자가 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관찰자 그리고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더는 과거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닌‘나’의 일이 됨으로써 감정을 건드린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고 입 모양으로 말하는 장면을 인상 깊게 읽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은 사람들의 심정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막고 조용히 울 수밖에 없었다.
최소 16세 이상의 학생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감각적인 동시에 섬뜩한 고통 묘사, 그리고 2장의 지나치게 추상적인 표현은 14세에서 15세가 읽기엔 조금 어려운 감이 있지 않나 싶다. 또한,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이미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엉터리 근거를 갖고있다. 그렇기에 문학작품인 ‘소년이 온다’ 대신 5.18 관련 논문 등을 읽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동호, 정대, 은숙, 진수, 선주, 동호의 엄마,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개별적이지만 유기적인 기억이 모여 1980년 광주가 된다. 이 책은 끊임없이 여름날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선 안된다고 끈질기게 구청에 전화하던 은숙처럼, 그때의 광주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 자료를 포함한 논문이나, 생존자들의 증언만큼이나 중요한 소설이다. 고통의 시간을 글로서 승화시킨 문학.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읽기를 추천한다.
아무리 잊으려고 몸부림을 쳐도 잊히지 않는 일들도 있다. 내게 있어 1980년 광주가 그러하다. 색이 바랜 흑백사진 속에만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읽고, 공감하고, 기억해야한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
과제로 제출했던 내용을 기워서 업로드.
읽느라 참 힘든 책이었다. 내 감정이 너무 버거워서 1~20페이지마다 멈췄다가 읽기를 반복.
'내가 건너온 무더운 여름을 정말 그는 건너오지 못했나.' 라는 부분이 많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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