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구병모) 서평
해냈다, 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했던 게 언제였더라. 선명하게 기억나는 몇분 전의 기억부터 슬슬 기억 어디께에서 사라져가는 몇년 전의 기억까지 뒤져봐도 썩 성취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지금 뭔가 해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감정이 시간이 침식시킬 성취의 편린쯤 되는 까닭일까.
책장의 마지막을 덮어본 것이 언제였더라. 그래, 지난 5월 쯤에 읽었던 "소년이 온다"였다.
이번에야말로 책을 제대로 읽어보겠다며 빌렸던 책들은 100페이지도 채 넘기지 못한 채 서가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어둠 속에서 당신의 등을 덧그렸다는 혹자의 노랫말도 있던데. 나는 빛 잘 드는 내 방에서 책등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바라보다가, 바라보다가 허투루 15일이라는 시간을 날리곤 했다.
결사코 책을 읽어보겠다는 마음가짐도 아니었고, 뭐라도 읽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경동맥을 끊어버리겠다는 활자 중독도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가 이 책이 참 재밌더라, 하는 말에 충동적으로 대출한 거다.
60대 여성 킬러는 확실히 참신하다.
소재의 참신함은 곧 사고의 참신함으로 튀었다. 나도 모르는 새 짓씹은 오른볼 안쪽이 너절했다.
장황한 문체는 한번에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소설의 내용과 어우러져 기묘한 느낌을 주는 것이, 그것또한 작가의 의도한 바가 아닌가라는 의심도 들었다.
구색도 못 갖춘 서평이지만 몇 마디만 더 얹어보겠다. ISBN 18자리 중에서 마지막 5자리의 숫자, 그 중 첫번째가 0이더라. 누구나 읽어도 상관 없다는 얘기다. 책장을 덮은 지금에야 우스개로 하는 말이지만, 20대부터 60대인 등장인물들이 방역 일을 하는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
읽어나가면서 파과란 破果인지 破瓜인지 고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돼먹지도 않은 서평의 결론, 즉 나의 돼먹지도 못한 성취감은
"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라는 소설의 문장으로 귀결된다.